• 2025. 12. 21.

    by. 리브랜딩 디자이너

    폐창고를 리브랜딩 공간의 하나로 볼 때 농촌에는 오래전 그 역할을 마친 채 조용히 퇴장한 건물들이 많다. 폐창고는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시간의 먼지를 쌓아왔다. 메타디스크립션: 버려진 폐창고가 농촌 예술센터로 다시 살아나며, 공간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감성과 호흡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산업화 이전에는 수확물을 쌓아두던 중심이었던 그 공간이, 지금은 또 다른 창작물을 담아내는 장소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단순한 건물 개조가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전환시키는 일이었다. 농촌이라는 맥락 속에서 예술은 여유롭고 느린 흐름 속에 존재하고, 그 속에서 폐창고는 다시 사람을 부르는 공간이 되었다. 낡은 벽돌과 녹슨 철재 구조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 요소와 나란히 병치되며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역성과 어우러진 폐창고 리브랜딩

    농촌 예술센터로 리디자인된 폐창고는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거나 창작 공간으로 활용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지역성과 긴밀히 엮이며, 마을 주민과 예술가 사이의 연결점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폐창고는 1960년대 중반 지어진 곡물 저장소로, 이미 구조적으로는 튼튼했지만 외관은 세월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이 흔적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낡은 외벽은 그대로 유지하되, 창문과 입구만 현대적 감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농촌의 시선에서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그러나 동시에 오래된 기억을 완전히 없애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이 공간은 농촌의 자연과 사람 사이의 리듬을 해치지 않기 위해, 외부 동선과 내부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흐르듯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인근 밭에서 일하던 주민이 가볍게 들를 수 있도록 정문 대신 측면 벽에 문을 열고, 마당과 창고 사이에는 별도의 데크 없이 흙길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농촌이라는 삶의 방식에 맞춘 리브랜딩 전략이었다.

    폐창고를 활용한 농촌 예술센터 디자인 사례

    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 디자인 전략

    예술센터로 재탄생한 폐창고는 다양한 창작 활동이 가능하도록 내부 공간의 유연성과 기능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단순히 전시회나 강연이 열리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작가들의 창작 공간,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 공연 리허설, 마을 회의 등 다용도 활용이 가능해야 했다.

    이를 위해 천장의 고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에 이동형 가벽 시스템을 도입했다. 각 벽면은 작품 설치를 고려한 갤러리용 레일이 설치되었으며, 바닥은 광택을 줄이고 내구성을 강화한 고밀도 목재를 사용했다. 조명은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천장에 투명 패널을 도입했고, 야간에는 트랙 조명으로 각각의 공간별 색온도를 다르게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무대 기능을 가진 구역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열린 원형 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관람자와 창작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농촌이라는 지역의 소통 방식을 반영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창고의 벽체 일부를 그대로 노출시켜, 그 표면이 시간이 흐른 흔적임을 디자인적으로 드러낸 점은 이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정이었다.


    커뮤니티를 위한 참여형 프로그램 기획

    리브랜딩 공간이 단순히 외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작업장’이 되기 위해서는 운영 전략도 디자인만큼 중요했다. 이 농촌 예술센터는 특히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 기획이 구성되었다. 예술은 외부에서 수입된 고급 콘텐츠가 아니라, 마을 내부에 이미 존재하던 감각과 기술을 다시 꺼내어 조명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센터의 운영자들은 ‘방문자’보다 ‘참여자’라는 개념에 무게를 두었다. 단순히 누군가가 와서 감상하고 떠나는 구조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외부인이 함께 작업하고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취지에서 프로그램 구성도 다층적이었다. 워크숍, 소규모 전시, 공연 리허설, 아이들 대상의 주말 창작 수업, 그리고 마을 회의나 공동 식사 등이 함께 운영되었다.

    주 2회 이상 열리는 워크숍에서는, 마을 농산물을 활용한 천연 염색 작업, 전통 기법을 응용한 종이공예, 벽화 그리기, 그리고 계절 행사를 중심으로 한 설치미술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활동이 포함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외부 작가들이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공동 강사로 참여하는 이중 강사제를 도입한 점이었다. 이는 도시 예술가가 마을을 일방적으로 '꾸며주는' 구조에서 벗어나, 마을의 감각과 경험이 예술 안에서 주체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설계였다.

    마을 주민이 가지고 있던 수공예 기술이나 생활지식이 예술 콘텐츠로 재해석되면서, 공간은 더욱 살아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예를 들어, 70대 어르신이 직접 전통 짚공예를 시연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대적 오브제를 만드는 수업이 진행되었고, 마을 부녀회는 제철 재료를 활용한 향토 음식 만들기 워크숍을 통해 외부 방문자와 지속적인 교류를 형성했다.

    그 결과, 예술센터는 단순한 관람 장소가 아니라 지역 문화의 순환고리가 되었고, 외부 방문객도 단순한 관광을 넘어 ‘참여하는 체험자’로서 공간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러한 참여형 프로그램은 공간의 활용도뿐 아니라 정서적인 소속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공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예술이라는 키워드가 지역의 일상과 접속되는 구체적인 연결점이 되었다.


    폐창고 리브랜딩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자립 전략

    농촌이라는 환경은 도시보다 자원도, 유동인구도 부족하다. 따라서 폐창고를 리브랜딩 한 공간이 지속 가능하려면 단순히 아름답게 리디자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영 방식부터 독립성과 자립성을 면밀히 고려해야 하며, 단기적인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예술센터는 외부의 지원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인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초기부터 운영단계까지, 공간이 소비되는 장소가 아닌 ‘경제 흐름의 일부’로 작동하도록 설정한 점이 눈에 띈다.

    주요 수익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참가비 수익이며, 이는 전체 운영 예산의 약 30%를 차지했다. 둘째는 예술센터 브랜드를 활용한 소규모 굿즈 판매로, 엽서, 손수건, 수공예품 등은 대부분 지역 예술가나 주민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셋째는 지역 농가와 연계된 장터 운영으로, 계절별 특산물을 소량 판매하는 팝업 마켓 형태였다.

    굿즈는 단순한 로고 상품이 아니라, 지역 작가와 농민이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차별화됐으며, 포장에도 예술센터의 고유 색상을 담아 ‘기억에 남는 상품’을 지향했다. 예를 들어, 예술센터에서 수확한 약초로 만든 향주머니, 폐자재를 재활용한 북마크, 주민이 직접 그린 손그림 카드 등은 예술과 지역 자원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또한 지역 내 소규모 카페, 민박과 연계해 예술센터 방문이 단기 체류로 이어지도록 연계 패키지를 기획함으로써, 공간 이용자와 지역 경제 사이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방문자는 단순히 예술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경험하고, 지역 농산물을 맛보고, 밤에는 로컬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마을과 더욱 깊이 연결되었다.

    공간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지역의 문화경제에 기여하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예술센터라는 하나의 장소가 지역 내 여러 활동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며,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순환을 동시에 만들어낸 예시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운영자는 '가장 예술적인 공간이 결국 가장 실용적일 수 있다'는 생각 아래, 단단하고도 유연한 자립 시스템을 설계한 셈이었다.


    장소를 다시 움직이게 한 리브랜딩

    폐창고를 농촌 예술센터로 리디자인한 이 사례는, 공간 자체의 외형 변화보다도 그 공간에 담긴 태도와 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농촌이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서, 예술은 도시에서처럼 대규모 기획이나 자본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마을과 공간 사이의 관계로 이어진다.

    공간이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그 안에 삶의 흐름이 생겼다는 뜻이다. 폐창고는 이제 과거를 짊어진 폐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매일 담아내는 열린 플랫폼이다. 그리고 그 성공은 단순히 디자인을 잘해서가 아니라, 지역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운영의 지속성을 고민한 결과였다.

    이처럼 폐방치시설 리브랜딩은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그 장소가 어떤 의미로 다시 호흡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어야 한다. 농촌 폐창고라는 한계가, 오히려 가장 생생한 감각으로 공간을 살려낸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 사례는 분명하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