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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리브랜딩 카페 사례의 첫 주인공은 낡은 교실을 다시 연 사람은, 책가방을 메고 그 교실을 떠났던 아이였다. 시간이 멈춰버린 폐교 건물은 그에게 과거의 풍경이자, 지금은 사라진 질문이었다. 왜 이 건물은 그대로 방치돼야 했을까. 왜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짐으로 남았을까. 청년 창업자가 만든 폐교 리브랜딩 카페 사례는 그 질문에 대한 한 사람의 대답으로 시작되었다. 6년 동안 도시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초등학교였던 폐교를 카페로 리브랜딩 하기까지 18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기억을 고정하고, 일상을 새롭게 연결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폐교 리브랜딩 창업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
김도윤(가명)은 서울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뒤, 한 스타트업에서 3년간 일했다.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회의감 속에서 고향을 찾았고, 어린 시절 다녔던 초등학교가 그대로 폐쇄된 채 잡초에 잠식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학교 건물은 철거 직전 상태였고, 지자체는 공공창고로 용도 변경을 검토 중이었다. 그는 지역청년 지원사업과 공간활용 민간제안 사업에 동시 지원했고, 지방교육청과 5년 사용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창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폐교 건물은 전기 인입 자체가 불가한 상태였고, 수도관은 겨울마다 동파되던 노후 관로였다. 화장실은 건물 외부에 위치했고, 실내에는 냉난방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김도윤은 예산의 60% 이상을 설비에 투입해야 했고, 실제로 카페 인테리어는 전체 예산의 30% 이내로만 구성해야 했다. 그는 인근에서 철거 예정인 폐건물에서 재활용 가능한 목재를 구했고, 창문은 아예 기존 것을 떼어내어 아크릴과 목재 조합으로 직접 제작했다.
교실을 카페로 바꾸는 디자이너의 시선
공간 디자인은 그의 전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객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와 대화하는 프로젝트였다. 기존 교실의 벽은 무리하게 도배하지 않고, 과거 학생들이 남긴 낙서를 투명 보호막으로 감싸 그대로 살렸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교실의 칠판’을 메뉴보드로 사용한 아이디어였다. 이 칠판은 실제로 김도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용하던 교실에 있던 것이었다. 카운터는 교무실 책상을 재활용해 제작되었고, 좌석은 폐가구를 수거해 리폼한 뒤, 바닥에 고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었다. 그는 “정답이 있던 공간을, 질문이 오가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내부 조명은 자연광을 활용한 구조로 배치됐고, 해가 지는 시간에는 교실 창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계산되어 설계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감성 복고가 아니라, 장소성과 개인의 기억을 디자인 언어로 번역한 작업이었다.
폐교 리브랜딩 카페가 마을에 만든 변화
카페가 문을 연 첫날, 마을 주민 40여 명이 줄을 섰다.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그중 한 여성은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1978년 그 자리에 앉아 졸업사진을 찍었고, 이후 다시는 교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카페는 그 순간부터 단순한 커피 판매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이 다시 자기 과거를 만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이후 이 카페는 지역 소규모 플리마켓, 고령자 일자리 교육 공간, 마을 작은 도서관으로 기능을 확장했다. 청년 창업자는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이름의 어린이 공방 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이는 인근 초등학교와 협력해 정규 활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학교가 사라졌던 자리에서 다시 교육이 시작되는 구조는, 주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더 나아가 이 공간은 지역신문에 소개되면서 타 지역에서의 방문 수요도 늘어나게 되었다.
법과 제도의 장벽을 넘는 과정
김도윤은 폐교를 활용하면서 가장 예상 밖의 문제로 법적 용도 변경 이슈를 꼽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공건물’을 임대해 카페를 차리는 일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행정 절차가 뒤따랐다. 교육청과 정식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교육용지로 분류되어 있어 상업시설로 활용하려면 관련 법률에 따라 용도 전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그는 직접 건축사 사무소에 자문을 요청해 공간의 활용 목적과 실내 구조를 바탕으로 ‘교육지원 복합시설’이라는 중립적 용도로 등록을 변경했다. 그 안에서 카페는 ‘체험형 부대시설’로 분류되어 운영이 가능해졌고, 이 구조는 향후 행정 감사나 점검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용도 변경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내 가스와 수도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소방 점검, 정기 위생 검사, 건물 안전 인증까지 모두 새롭게 받아야 했다. 특히 소방시설은 학교 구조 특성상 미비하거나 오래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내에 자동 화재 감지기와 스프링클러를 새롭게 설치해야 했고, 그 비용만 약 400만 원이 소요되었다. 해당 건물은 원래 집단이 거주하지 않는 교육시설이었기 때문에, 방문객이 상시 드나드는 다중이용시설로 전환되기 위해선 건축물 용도 전환의 물리적 조건도 충족해야 했다. 이러한 행정 절차만 총 4개월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실제 공사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폐교 건물은 문화재 등록 또는 경관보존 구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외관을 변경하거나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단순 작업조차도 해당 지자체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한 번은 외벽 도장용 색상 팔레트를 변경하려고 했을 때, 도시계획과와 경관심의 담당자의 의견이 엇갈려 3주간 논의가 이어졌다. 그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수기로 정리했고, 결국 **‘지역 폐시설 활용 가이드북’**이라는 자료를 만들어, 같은 고민을 가진 예비 창업자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가이드북에는 행정 절차뿐 아니라 계약서 작성 시 유의할 조항, 건물 구조물의 하중 계산법, 예산 계획서 작성 방법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김도윤은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제도 안에서 공간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를 실천적으로 배운 기획자로 성장했다. 그가 리브랜딩 한 공간은 디자인으로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제도적 벽을 통과한 끝에 살아남은 구조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의 다음 프로젝트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
작고 느린 성공, 그러나 단단한 공간
카페 개장 1년 후, 월평균 매출은 약 450만 원, 순이익은 130만 원 수준에 머물렀다. 단순히 수치만 보면 큰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김도윤은 수익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바로 공간을 다시 찾는 사람들의 반복된 발걸음이었다. 1년간 두 번 이상 방문한 고객의 비율이 전체의 60%를 넘었고, 다수가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오겠다”, “이 공간을 친구에게 소개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벽면 한쪽에는 손님들이 손글씨로 남긴 후기들이 가득하고, 매월 자발적으로 카페에 그림을 기부하는 마을 작가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감성 소비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 내부에서 자생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카페 메뉴 중 일부는 인근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를 사용하며, 매출의 일부는 마을 장학회 기금으로 매달 기부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이 공간이 단순한 ‘청년 창업자의 개인 사업’이 아니라, 함께 키워가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했다.
그는 외부 자본 없이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임대료를 최소화하고, 마케팅 역시 온라인 광고보다는 방문자와의 관계 맺기에 집중했다. SNS 채널도 직접 운영하며, 카페에 방문한 손님의 사연이나 마을 소식을 꾸준히 공유했다. 이러한 방식은 느리지만, 정서적 신뢰와 연결을 기반으로 한 브랜딩으로 작동했다. 단골 고객 중에는 카페를 중심으로 마을에 관심을 갖고 이주를 고려하는 청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2호점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폐지된 면사무소 건물을 마을 창작소 겸 게스트하우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이 공간은 단기 체류형 창작자들을 위한 거주 공간이자,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상되고 있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민 설명회를 열고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공간 기획이 아니라 지역과 공존하는 리브랜딩 모델로서 진화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빠른 성공보다 오래 남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히 겸손한 창업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의 프로젝트는 실제로 작지만 단단한 지속 가능성의 실험장이 되었고, 지역을 다시 호흡하게 만드는 중요한 숨구멍이 되었다. 폐교라는 방치된 구조물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다시 살아나는 과정은, 숫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장소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폐교는 다시 학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청년 창업자의 리브랜딩은 폐허를 재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멈춰 있던 이야기의 흐름을 다시 잇는 작업이었다. 사람들은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살았던 시간과 마주한다. 그 시간은 정지된 추억이 아니라, 누군가의 현재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공간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그릇이다. 버려진 장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자리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 폐교 카페는 그 결심이 만든 증거다. 그리고 그 증거는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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