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12. 12.

    by. 리브랜딩 디자이너

    폐시설을 체험형 공간에서 기억을 걷는 공간은 감상이 아니라 경험으로 완성된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무언가를 ‘보는 것’을 넘어서, ‘직접 느끼고 반응하는 장소’를 원한다. 폐시설을 체험형 공간으로 만든 디자인 기획은 그런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낸 변화다. 낡고 오래된 구조물에 손을 얹고, 과거를 체험하며 현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감각. 멈춰 있던 시간을 걷는 사람들은, 벽에 남은 흔적을 보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공간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체험은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든다. 단순히 리노베이션 된 장소가 아니라, 거기서 어떤 ‘경험이 발생하는가’가 이제 공간 디자인의 핵심 언어가 되고 있다. 폐시설은 더 이상 도시의 그림자가 아니며, 체험이라는 요소를 통해 도시의 기억을 다시 꺼내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을 덧입히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체험형 디자인으로 읽어낸 폐시설의 가능성

    과거에는 폐시설을 재생하는 목적이 주로 미관 개선이나 단기적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간 자체가 제공하는 체험이 방문객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전달하면서, 체험형 디자인은 리브랜딩의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폐공장, 폐역사, 폐광장 등은 독특한 구조와 텍스처를 지니고 있어, 시각적 자극뿐만 아니라 촉각적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으로 주목받는다.

    한 리브랜딩 프로젝트에서는 폐섬유공장의 방직기를 그대로 살려 방문객이 직접 실을 감아보는 체험을 구성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폐창고의 벽면을 따라 설치된 철제 레일 위를 따라 조형물을 이동시키는 놀이형 콘텐츠가 제작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전시’ 개념을 넘어,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능이나 구조를 통해 몸으로 기억하는 방식을 구현한다. 이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방문객의 참여와 몰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폐시설을 체험형 공간으로 만든 디자인 기획


    공간 기획 단계에서 고려된 사용자 경험

    체험형 공간 디자인은 방문객의 시선을 어디에 머물게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폐시설을 리브랜딩 할 때 체험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구성하려면, 사용자 동선과 공간 구성의 연계를 사전에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일반적인 전시 공간은 관람만을 고려하지만, 체험형 공간은 사용자가 행동하는 순간마다 경험이 발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폐학교를 리브랜딩 한 어린이 창작 체험관에서는 건물의 복도를 ‘이동 통로’가 아니라 ‘경험의 연속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아이들은 교실마다 다른 테마의 활동을 진행하고, 그 활동이 서로 연결되도록 미션형 구조가 더해졌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가 다양해서가 아니라,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설계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선을 통해 경험이 연결되고, 각각의 경험이 이전 공간과 기억을 공유하도록 한 설계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공간 디자인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리브랜딩 대상이 된 폐시설의 물성 활용

    체험형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폐시설의 디자인은, 무조건 깨끗하고 새롭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간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물성(materiality)**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체험의 깊이를 결정짓는다. 거친 콘크리트, 녹슨 철재, 낡은 목재 바닥 등은 단순히 노후된 자재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을 자극하는 텍스처로 사용된다.

    특히, 산업 유산에 가까운 폐공장 구조물의 경우, 그 안에 남겨진 기계류, 벽체 흔적, 높이차를 활용한 입체적 구조 등이 오히려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 사례에서는 벽돌을 하나씩 쌓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 벽돌은 실제로 폐시설 해체 당시 나온 잔재를 정리해 만든 것이다. 사용자는 ‘과거의 일부’를 직접 다뤄보며, 단순히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설계는 체험 콘텐츠에 정당성과 감정을 동시에 부여한다. 경험은 그저 재미있기만 해서는 오래 남지 않는다. 그 안에 의미가 담겨 있을 때, 사람들은 공간을 기억하고 다시 찾는다. 그리고 이때 가장 강력한 재료는, 새것이 아닌 오래된 흔적이다.


    감각을 확장하는 인터랙티브 기술의 도입

    현대의 체험형 공간은 단지 물리적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인터랙티브 시스템은 폐시설이라는 아날로그적 공간에 미래적 층위를 더해준다. 증강현실, 센서 기반 조명, 사운드 인터페이스 등은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공간이 반응하도록 구성되며, 이는 방문자가 공간과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예를 들어, 폐터널을 리브랜딩 한 한 사례에서는 방문자가 터널을 지나갈 때마다 센서가 작동해, 빛과 소리가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체험은 어둠과 빛, 침묵과 소리가 교차하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감각적 악보처럼 구성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폐광을 재해석한 전시관에서, VR을 통해 광부의 하루를 체험하는 콘텐츠를 기획하여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몰입감을 유도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지만, 그 도구가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 공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폐시설의 인터랙티브 디자인은 단지 신기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물성과 시간성을 보완하고, 사용자의 기억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


    체험 이후를 고려한 공간의 지속성 설계

    체험형 공간은 방문 시점에서 감동을 주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그 이후에도 사용자가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체험 콘텐츠 자체의 확장 가능성공간의 지속 운영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많은 리브랜딩 사례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초기 체험 콘텐츠는 흥미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조롭고 반복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시즌형 콘텐츠 교체, 방문자 참여형 콘텐츠 리뉴얼,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 콘텐츠 제작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폐역사를 리브랜딩 한 체험 전시장에서는 3개월 단위로 지역 예술가와 함께 전시물을 바꾸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소규모 체험 워크숍을 운영했다. 이처럼 콘텐츠를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관리할 수 있어야, 체험형 공간은 단발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수익 구조도 공간의 지속성과 직결된다. 단순 입장료나 체험료 외에, 굿즈 판매, 대관 운영, 브랜드 협업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간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내부에서 생성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이 모든 설계가 리브랜딩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계획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체험형 공간은 콘텐츠 소비 후 잊히는 장소로 퇴색할 수 있다.


    체험을 통해 재구성된 공간의 생명력

    체험형 공간으로 재탄생한 폐시설은 그저 다시 꾸민 건물이 아니다. 외형만 단장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과 기억이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의 장소로 다시 태어난다. 과거에는 폐시설을 단순히 치우고 채우는 방식으로 다뤘지만, 체험을 기반으로 설계된 공간은 처음부터 다르게 작동한다. 방문객은 단순히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며 경험의 일부가 된다. 이 참여는 감정을 이끌어내고, 경험은 기억으로 변한다. 그렇게 감각적 상호작용이 반복되면서 공간은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체험은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맥락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따라, 리브랜딩의 깊이와 지속 가능성이 달라진다. 단순한 시각적 자극은 순간적인 감탄으로 끝나지만, 체험은 감각과 기억을 동반해 사용자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다. 낡고 버려졌던 공간은 이제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 경험의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체험을 기획하는 디자이너의 시선과 지역의 서사가 공존하고 있다.

    결국 체험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공간의 본질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용자가 공간을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의 일부가 되며, 기억을 만들고 돌아가는 구조가 되면, 공간은 단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관계 맺는 장소가 된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공간은 오래도록 사람을 기억하고, 사람도 그 공간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